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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에이스, 코비 브라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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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이커스의 새로운 아이콘이 탄생한 순간

LA 레이커스의 새로운 아이콘이 탄생한 순간

2024.02.23

2024.02.23

'위대한 농구선수 75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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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or : Rookie, 이동환 기자




농구의 모든 것에는 역사와 스토리,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농구의 표면과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전달드립니다.

※ 해당 콘텐츠는 
Eland Museum의 특별한 소장품으로 국내 대표 농구 매거진, Rookie와 함께 합니다.

 

NBA 역사상 오직 한 팀에서 20년 이상 뛴 선수는 단 세 명이다. 그리고 그 세 명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랜차이즈 스타의 개념이 점점 희미해져가던 2000년대 이후에 등장했다.

덕 노비츠키, 코비 브라이언트, 우도니스 하슬렘이 그 주인공이다.

노비츠키는 댈러스에서 1998년부터 2019년까지, 코비 브라이언트는 레이커스에서 1996년부터 2016년까지 뛰면서 역사를 썼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은퇴한 우도니스 하슬렘은 2003년부터 2023년까지 오직 마이애미 유니폼만 입었다.




※ LA레이커스에서 10년이 넘게 활약한 코비 브라이언트 영구 결번식 (출처: NBA)

이 중 최고의 스타였던 코비 브라이언트는 커리어 중반까지 저평가에 시달려야 했다. 1996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고졸 선수로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은 코비는 첫 두 시즌 동안에는 식스맨으로 뛰었지만, 1998-1999시즌부터 레이커스의 주전 슈팅가드로 당당히 발돋움했다.

코비는 1998년에 역대 최연소 올스타 기록을 쓰며 스타성을 입증했고, 1999년에는 생애 첫 올-NBA 팀에 입성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올라선다. 1999-2000시즌에는 평균 22.5점을 기록했고 이후 샤킬 오닐과 함께 레이커스를 이끄는 원투 펀치로 공인받았다. 레이커스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잇따라 우승에 성공, 역사상 다섯 번째 쓰리-핏(three-peat) 팀이 된다. 현대농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하는 1980년대 이후로 치면 1990년대 시카고(2회)에 이어 세 번째였다.



※ LA 레이커스의 원투펀치,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

하지만 쓰리-핏 달성 후에도 코비는 저평가에 시달려야 했다. 샤킬 오닐의 존재 때문이었다. 당시 오닐은 스스로를 'MDE(Most Dominent Ever,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선수)'라고 칭할 정도로 압도적인 선수였다. 때문에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 슈팅가드로 올라선 코비를 향해 쓰리-핏은 오닐 덕분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 LA 레이커스 쓰리핏 당시 오닐의 스텟 (출처 : FW)

 

코비는 2002-2003시즌에 82경기에 모두 출전, 평균 30.0득점을 기록했고, 2004년 여름 오닐이 트레이드로 마이애미로 향한 후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레이커스의 절대적인 에이스가 됐다.  

2005-2006시즌에는 NBA 단일 경기 최다 득점 2위 기록(81득점)을 쓰며 'Mr.81'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평균 35.4점을 기록하며 득점왕도 차지했다. 1987-1988시즌의 마이클 조던(35점) 이후 18년 만에 등장한 평균 35점 이상 득점왕이었다 




※ 코비 브라이언트 81득점 게임 하이라이트 (출처: NBA)

하지만 이때의 코비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 못하는 득점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당시 레이커스의 전력은 상당히 불안했다. 라마 오덤, 캐론 버틀러, 콰미 브라운, 스무시 파커 같은 선수들이 있었으나 경기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07년 플레이오프에는 8번 시드로 출전, 1번 시드 피닉스를 탈락 직전(3승 1패)까지 몰고 갔지만 이후 내리 3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코비는 오닐 없이 우승할 수 없는 선수"라는 말이 여전히 남아 있었음은 물론이다. 

코비의 한은 이후 2년이 더 지나서야 풀린다.
 

 

레이커스는 2007-2008시즌 도중 멤피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스페인 출신의 천재 빅맨 파우 가솔을 영입한다. 이 시즌 레이커스는 서부 1위를 차지했고 코비는 생애 첫 정규시즌 MVP에 선정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8년 파이널 무대를 밟은 레이커스는 당시 폴 피어스-케빈 가넷-레이 알렌으로 이어지는 빅3를 결성한 보스턴에 무릎을 꿇으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 당시 보스턴을 이끈 보스턴 BIG 3
좌측부터 폴 피어스, 케민 가넷, 레이 알렌 (출처 : Boston Celtics)

 

그러나 2009년 파이널에서 올랜도를 꺾고 마침내 우승을 일궜고, 2010년 파이널에서는 7차전 혈투 끝에 보스턴을 제압, 2년 전 파이널 패배를 설욕하며 리그 2연패에 성공한다. 2009년, 2010년 파이널 2연패연속 파이널 MVP 수상으로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선수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코비는 더 이상 샤킬 오닐의 그늘에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에이스로 당당히 명문 레이커스를 우승으로 이끈, LA 스포츠의 새로운 아이콘이 됐다.


 

※ 08-09 시즌 NBA 파이널 우승 트로피와 MVP 트로피를 함께 들고 있는 코비 브라이언트
 

 

저평가를 딛고 위대한 2연패를 일궈낸 코비 브라이언트의 숨결을 한국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곧 찾아온다.

 

오는 2월 8일부터 3월 17일까지 현대백화점 판교점 10층 토파즈홀에서 농구 관련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 ≪위대한 농구선수 75인 전 vol.1≫이 개최된다. 총 150여개의 NBA 관련 역사적인 아이템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2010년 파이널 기간에 코비가 실착한 유니폼이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 코비 브라이언트의 2010년 파이널 실착 져지 (이랜드뮤지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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