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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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콜렉토리
[GOAT 컬렉션]
패션에도 '처음'이 있었다
모든 혁신에는 처음이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입는 옷의 실루엣, 소재, 구조 뒤에는 누군가의 상상력이 처음으로 작품이 된 순간이 있었다. 이랜드뮤지엄이 서울 강서구 마곡동 마이아트뮤지엄 마곡원그로브점에서 4월 24일 오픈한 패션 컬렉션 특별전 '상상력 옷장(A Wardrobe of Imagination)'은 바로 그 순간을 조명하는 전시다. 2024년 5월 동대문에서 선보인 'RSVP: 위대한 유산으로의 초대'가 패션이 지나온 시간을 비추었다면, '상상력 옷장'은 그 유산이 막 싹튼 처음의 순간을 담았다.

'상상력 옷장' 포스터
패션사를 바꾼 혁신의 순간들
전시에 등장하는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시대에 패션의 문법을 새로 썼다.
1947년,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은 '뉴룩(New Look)'으로 전후 여성 패션의 패러다임을 뒤집었다. 전쟁 중 억압됐던 여성성을 되살리는 풍성한 스커트와 잘록한 허리선은 당시 사회에 충격과 환호를 동시에 안겼다. 옷 한 벌이 시대의 정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디올이 증명한 순간이었다.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의 '뉴룩' 스타일 ⓒDior
1970년대,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는 성별의 경계를 허물었다. 남성에게 스커트를 입히고, 란제리를 아우터로 끌어올리며 젠더리스 패션의 선구자가 됐다. 마돈나의 콘서트 투어 코르셋 의상으로 대중문화와 하이패션의 접점을 만들어낸 것도 그였다.
1988년, 마르탱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는 패션의 해체주의를 개척했다. 솔기를 겉으로 드러내고, 옷의 내부 구조를 의도적으로 노출하며 '완성된 옷'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을 던졌다. 브랜드 로고조차 숨긴 채 작품으로만 말하는 방식은 패션계에 전례 없는 충격이었다.
1993년,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는 옷의 구조 자체를 재정의했다.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라인은 입체적인 주름 기법으로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옷을 만들어냈다. 소재와 신체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한 이 시도는 패션과 조각의 경계를 허물었다.
1990년대부터 2010년까지,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은 쇼의 형식 자체를 파괴했다. 런웨이에서 레이디 가가의 신곡을 발표하고,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쇼를 공개하는 등 기존의 틀을 끊임없이 깼다. 패션쇼를 퍼포먼스 아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디자이너였다.
상상력이 옷장이 되기까지, 이랜드뮤지엄 30년
상상력 옷장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의상들
이 디자이너들의 오리지널 의상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랜드뮤지엄은 30여 년간 체계적인 준비 기간을 거쳐 음악·영화·스포츠·엔터테인먼트·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약 50만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게 됐다. 그 바탕에는 '문화보국'이라는 비전이 깔려 있다. 글로벌 문화유산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순간 발생할 수 있는 문화적 결핍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이랜드뮤지엄의 설명이다.
이랜드뮤지엄의 흥행 비결은 소장품의 희소성에만 있지 않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소장품을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결합해 흥미로운 전시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최근 3년간 수십 차례의 전시를 기획하며 흥행력을 인정받은 것은 그 준비의 결과물이다.
상상력 옷장: 디자이너의 처음을 만나다
이번 '상상력 옷장'에서는 알렉산더 맥퀸, 크리스찬 디올, 장 폴 고티에, 마르탱 마르지엘라, 이세이 미야케, 발렌티노 가라바니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 20인의 오리지널 의상과 패션 아카이브를 만나볼 수 있다. 관람객은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발전하는 스토리를 한자리에서 경험하게 된다.
맥퀸의 '디지털 프린트 오간자 드레스, 2010 S/S'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맥퀸의 '디지털 프린트 오간자 드레스, 2010 S/S'다. 평소 맥퀸이 즐기던 디지털 프린팅 기법으로 제작된 이 의상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선보인 컬렉션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900년대부터 현재를 관통하는 서양 복식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패션디자인·패션스타일리스트를 공부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
혁신은 언제나 상상력에서 시작됐다
디올의 뉴룩도,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도, 맥퀸의 디지털 런웨이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상상력이었다. 그 상상력이 옷장이 되고, 역사가 되고, 지금 마곡의 전시장 안에 오리지널 의상으로 걸려 있다. 패션의 혁신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궁금하다면, 이번 여름 마곡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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