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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에서 일하는 여자들 03. 김용순 조리사

 

많은 사람이 현업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갈망한다. 어떻게 일하는지, 어디서 인사이트를 얻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지, 어떤 비전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기획기사 <이랜드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각 사업부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주목한다. 업계와 직무는 다르지만 ‘내 일’을 가진 실무자로서 개인의 삶과 커리어, 성장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화한 인터뷰 형식의 기사다.

세 번째 인터뷰이는 50대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점 애슐리퀸즈 김용순 조리사다.


 

 

김용순 조리사의 50대는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환경이 바뀌었다. 그는 인천 강화도에서 쌀과 배추 농사를 지었다. 애지중지 키운 농산물과 가족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문득 삶을 좀 더 재미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남편과 함께 강원도 속초로 터를 옮겼다. 무연고지였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농사일에 뒷전이 되어버린 ‘나’를 되돌아보았다. 뭐라도 새롭게 도전하고자 일을 시작했다.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점 한식당 ‘해원’에 입사했다. 가족들은 만류했다. ‘왜 굳이 이 나이에 일하냐고. 어린 애들 밑에서 고생하는 것 아니냐고. 지금처럼 편하게 노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론 그도 걱정스러웠다. 5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기가 쉽지만은 않으니까. 하지만 도전했다. 벌써 3년 차. 나이는 어리지만 살뜰히 챙겨주는 동료들과 친구가 되었고, 토속적인 반찬보다 애슐리퀸즈의 양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삶에 활력이 생겼다. 17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적힌 언제나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 본래의 김용순이 되었다.


 

 

– 안녕하세요 조리사님.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점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다고요

벌써 3년 전이네요. 한식당 ‘해원’의 조리팀으로 입사했어요.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방문한 손님들의 식사를 만들었죠. 국수도 삶고, 육수도 만들고, 갈비도 넉넉히 재웠어요. 잡채나 홍어도 무치고요. 시중 제품이 아니라 손으로 만드는 거예요.

 

– 자주 먹어본 음식이니 아주 어렵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집에서 손님 치를 때 하는 음식들이잖아요. 종류는 비슷하지만 일정한 맛과 양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요. 모든 조리법은 재료의 정량을 맞춰야 하거든요. 집에선 좀 짜게 먹고 싶으면 간장이나 소금간을 더하고, 달게 먹고 싶으면 사과나 배를 갈아서 넣잖아요. 초반에 그 습관이 남아 있어서 애를 먹었어요. 몸에 익숙해지니 자연스레 정확한 시간과 일정한 맛을 지키게 됐죠.

 

– 입사 초반에 냉장고 앞에 많이 서 계셨다고 들었어요

나이가 드니 기억력이 안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재료를 찾는 것부터 시간이 걸렸어요. 예를 들면 팀장님께서 “당근은 왼쪽 냉장고 위 편에 있고, 조랭이떡은 두 번째 냉장고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알려주는데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사람이 직접 들어가는 대형 냉장고가 무섭기도 했고 머리에 수많은 정보를 넣으려니 에러가 생긴 거죠. 지금은 눈 감고도 냉장고 내부 위치를 정확히 말할 수 있어요. 재료 손질 후엔 직접 라벨 작업도 하고요.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것 같아요. (웃음)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점 애슐리퀸즈 전경

 

– 일하는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인천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었어요. 대부분 남편과 일을 했고, 가끔 시부모님과 마을 어르신들의 일을 도왔어요. 나이 지긋하신 분들과 지내다가 갑자기 어린 친구들과 일하니 낯설더라고요. 그런데 행복했어요. 이모- 하며 살갑게 다가와 주고, 서로의 연애사도 스스럼없이 말하고요.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하루예요.

 

– 가족들의 반응은요?

서울에 사는 아들 하나가 있어요. 처음엔 일하는걸 말렸어요. 힘든데 굳이 왜 다니냐면서요. 아들이 싫어하니 다니지 말까 싶었는데, 후회할 뻔했어요. 요즘은 걱정이 덜한가 봐요.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줘요.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제 여력이 닿는 데까지 성실하게 다니고 싶어요.

 

 

 

– 지금은 애슐리퀸즈에서 재료준비를 담당하신다고요

많은 고객의 사랑을 받은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점 애슐리W가 애슐리퀸즈로 확장했어요. 한식당 ’해원’은 애슐리퀸즈에 집중하기 위해 폐점했고요. 지금은 애슐리퀸즈에서 재료 준비와 손질을 담당해요.

 

– 구체적으로 하루 업무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스케줄 근무라 날마다 달라요. 오늘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6시 반까지 출근했어요. 양배추나 양파처럼 대부분의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파악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작업해요. 그리고 정량에 맞춰 소분합니다. 가끔 조식팀 업무도 지원해요. 투숙객이 몰리면 순식간에 음식이 소진되거든요. 그때 빠르게 작업해서 보내줘요. 2시쯤 되면 얼추 일이 마무리돼요. 마지막으로 냉장고 라벨 작업을 확인하고 내일 챙겨야 하는 재료를 정리해요. 그리고 3시 반에 퇴근합니다.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점 애슐리퀸즈 이상현팀장과 김용순조리사

 

– 잠깐 퇴사하신 적 있다고 들었어요

건강 문제로 2년 차에 사직서를 냈어요. 정직원이 되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니 참 야속하더라고요. 칼질을 많이 해서 팔과 손목에 염증이 생겼고, 오래 서 있는 만큼 발바닥도 좋지 않았어요. 손가락이 저리고 허리가 아팠죠. 총지배인님께서 5개월 정도 휴직하면서 치료받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해주셨는데, 제 일까지 맡게 될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퇴사했죠.

 

–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어떻게 재입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퇴사하자마자 바로 수술하고 치료했어요. 한 석 달 정도 지났나? 건강은 회복했는데 일을 하지 않으니 몸이 너무 근질거리는 거예요. 이상현팀장님과 박연실파트장님께 “혹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까요? 일주일에 두 번도 좋고, 세 번도 좋으니 다시 출근하고 싶어요.”라고 연락 드렸어요. 두 분께서 많은 도움을 주신 덕에 이렇게 일하고 있어요.

 

해볼 기회조차 없어서 엄두를 못 냈던 것들

해보지 않아서 할 수 있을지 조차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해내고 있어요

 

– 조리사님께 ‘일’은 노동의 의미를 뛰어넘는 가치를 주는 것 같아요

항간에 50대는 사회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기라고 해요. 제 주변도 그렇고요. 동년배들이 일하기 어려운 때예요.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은 더 힘들고요. 켄싱턴에 이력서를 넣을 때도 걱정했어요. 50대가 되어보니 일은 금전적인 보상 이외에도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성취감이랄까요. 해볼 기회조차 없어서 엄두를 못 냈던 것들, 해보지 않아서 할 수 있을지 조차 몰랐던 것들. 작은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히 해내고 있어요. 실수가 두렵지 않아요.

 

– 주위 동료들의 도움도 컸을 것 같아요

저는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 다시 일할 수 있게 기회를 준 회사와 총지배인님, 어머니- 라고 다정하게 불러주시는 이상현팀장님과 박연실파트장님, 안영만과장님.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애슐리퀸즈 식구들. 여러분이 있어서 살 맛나는 세상이에요. 언제나 책임감 넘치는 모습에 저 역시도 좋은 자극을 받습니다. 퇴근 후에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놀러 나가자고 챙겨줘서 정말 고마워요. 요즘 사람 사는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 조리사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강단이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제 일에 적극적인 사람이요. 가족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동료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와 가족, 친구들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물러서지 않고 직접 나서고 싶어요. 아마 저 ‘김용순’에 대해 알아가면서 깨달은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온 성실함을 지키고 싶어요. 모난 곳으로 나가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고 싶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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